문명의 젖줄 에너지

생각해보면 불과 300여 년 전까지도 인류는 동력이라고 할 만한 것을 갖고 있지 않았다. 쓸 수 있는 힘이라고는 소와 말 같은 가축을 이용하거나 사람의 노동력이 전부였고, 자연에서 얻는 힘은 풍차를 돌릴 정도의 풍력, 물레방아를 돌리는 수력 정도가 고작이었다. 수천 년 동안 그랬던 것이 18세기 증기기관의 발명과 화석연료의 활용을 통해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 수백 톤의 기차를 끌고 거대한 배를 움직이는, 그 전까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힘을 운용하면서 단순히 산업뿐 아니라 사회 구조와 가치관까지 모두 변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잘 아는 산업혁명이다.
이후에는 이 동력을 더욱 크고, 지속적으로,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이 인류 문명의 중요한 숙제가 되었다. 효율이 높고 운용이 간편한 내연기관이 발명되었고, 전력망이 거미줄처럼 깔리면서 대규모 발전 설비로 만든 전기가 각 가정에 전달되었다. 이렇게 구축된 시스템은 밤을 밝히는 전등에서 시작해 텔레비전과 개인용 컴퓨터 그리고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의 행렬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이기를 가능케 해 왔다.

지속가능한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인식 필요

앞으로 100여 년이 지난 사회는 사실상 현재 사용하는 에너지 대다수가 그 수명이 막바지에 도달할 것이다. 하루에만도 엄청난 양이 소비되는 화석연료의 고갈에 대한 우려는 물론, 인간과 동식물의 건강과 목숨을 위협하는 각종 공해 그리고 결정적으로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 등으로 현재의 시스템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 이것은 단지 불편함을 넘어 사회의 근간을 위협하는 무척 심각한 문제인데, 미리 대비하지 못하면 사용 가능한 에너지의 양과 질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나라와 나라, 계층과 계층간에 심각한 갈등과 불평등이 초래될 것이다. 영화<매드맥스>에서 묘사된 것처럼 화학 에너지 사용으로 인한 환경오염과 함께 에너지 고갈로 인한 험한 세상의 도래도 그저 상상 속의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류는 막대한 양의 화석연료와 그것이 주는 풍요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 그만큼 에너지 소비를 줄이자는 캠페인 같은 것이 실효를 거두기란 쉽지 않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는 선진국들은 상황이 낫지만 이제 막 깨어나기 시작한 중국과 인도를 위시한 제3세계 수십 억 사람들에게 그런 요구는 그야말로 공염불에 불과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불공평하기까지 하다.
이런 와중에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술은 당면한 문제와 위기감을 따라잡기에 아직 부족해 보인다. 태양광 발전의 효율은 여전히 20%대에 머물러 있고 풍력이나 조력 등도 비용과 효율의 한계는 물론 환경파괴 등의 부작용도 우려된다. 원자력은 에너지 측면에서만 보면 무척 효율적이지만 사고의 위험성과 폐기물 처리 문제가 너무 커 아무리 낙관적으로 봐도 미래 지향적인 대안이라 말하기 어렵다.

미래 에너지 문제 해결,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중요

이렇게 보면, 인류가 당면한 에너지 문제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물론 에너지 낭비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기존의 신재생에너지 기술에 더 많은 인력과 자본이 투입돼야 한다. 하지만 그와 함께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문제를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한 기초과학에의 투자다.
구체적인 예로 우리나라의 시험용 핵융합로 케이스타(KSTAR,Korea Superconducting Tokamak Advanced Research)는 지난해 세계 최초로 플라즈마 이온 온도 1억 도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핵융합로는 인공태양이라고도 불리는데, 바닷물에서 무한정 얻을 수 있는 중수소와 리튬으로 수소 단 1그램을 융합해 석탄 21톤, 석유 1만 2,000리터에 상응하는 막대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게다가 핵분열을 사용하는 기존의 원자로와 달리 방사능이나 폐기물도 나오지 않는 친환경 에너지원이다. 비록 많은 기술적 장벽이 남아 있지만 충분한 투자와 노력이 더해진다면 인류가 심각한 에너지 위기에 빠지기 전에 실용화가 가능할 것이다.
또한, LS산전은 새로운 에너지 자원 개발의 필요성을 느끼고 10여년 전부터 태양광발전부터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신재생발전 시스템 전체를 아우르는 자체 기술 개발을 위해 대대적인 투자와 R&D 역량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렇게 직접 에너지와 관련된 영역 외에도 다양한 기초과학 분야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전자기학을 정립한 물리학자 제임스 맥스웰이 정작 전기가 실생활에서는 아무 쓸모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미지의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연구해 보기도 전에 그것을 어디에 쓸 수 있을지 알 방법은 없다. 이 미지의 영역을 찾아가는 것이 바로 기초과학의 역할이다. 우리 앞에 봉착한 에너지 문제 역시 무한에 가깝게 널려 있는 그 영역 속에 해답이 들어있을 것이다. 어리석음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진취적으로 과학과 기술발전을 향해 나아간다면 에너지 문제를 비롯해 지금은 높아만 보이는 많은 장벽을 결국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