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에 꼭 필요한 ‘인문학적 촉수’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사람을 향합니다’, ‘생각이 에너지다’, ‘진심이 짓는다’. 카피만 들어도 ‘아! 그 광고’라며 손뼉 치게 만들었던 카피라이터 박웅현. 광고분야에서 30년 넘게 일하면서 쌓은 경험과 내공은 TBWA KOREA CCO(크리에이티브 대표)로서 시대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먹거리와 광고회사 TBWA KOREA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또 다른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 광고를 제작하는 실무부터 회사의 비전을 만들어가는 일까지 박웅현 CCO에겐 ‘어렵지만,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치열한 경쟁 속에서 ‘먹고 사는 일’이었어요. 광고는 평범한 생각만으로는 굶어 죽기 딱 좋은 분야예요. 먹고 사는 일을 잘하려면 광고주의 문제를 잘 풀어야 하고, 문제를 잘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들 마음속에 메시지를 던지는 거 였어요.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가려면 인문적인 촉수를 한껏 세울 수밖에 없죠. 사람들이 어디에서 웃는지, 어디에서 걸음을 멈추는지, 어디에서 소름이 돋는지…, 가장 먼저 연구해야 할 건 사람들의 마음 속 풍경이에요. 이게 바로 인문적인 훈련이죠.”
그가 말하는 ‘인문’은 먼지 쌓인 고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가 평소 무심코 지나치는 자연현상에 인문학적인 말을 거는 작가들의 글을 읽어가며 삶에 대한 감수성, 즉 촉수를 키우는 것. 또 길거리 풍경, 일상적 대화 등 삶의 순간순간 더 많은 행복을 찾아내는 훈련이다. 이는 창의성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사소한 아이디어도 협업으로 커진다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미셸 루트번스타인 공저의 <생각의 탄생>이라는 책에 ‘발견은 모든 사람이 보는 것을 보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는 것’
이라는 문구가 나와요. 이게 바로 창의적인 사람이죠. 똑같이 보고도 ‘얼마나 깊이 보느냐’가 창의적이냐 그렇지 않으냐를 가름하는 거 같아요. 저는 평소 ‘많이 웃고 많이 울라’고 말하는데, 아무도 웃지 않는데 웃을 수 있고, 사람들은 무관심한데 울 줄 아는 사람들이 창의적이에요. 그러려면 많이 보고 많이 들어야 해요. 그게 인문적인 촉수로 연결되죠.”
박웅현 CCO는 변해가는 미디어 환경 및 광고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 ‘0팀’이라는 전위조직을 만들었다. 0팀은 주문이 들어오는 광고 대신 자발적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이거 어때요? 재밌지 않아요?”라고 제안하는 팀이다. 박웅현 CCO는 어느 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스페인 기행>을 읽다 ‘인류사의 돈키호테를 모아 볼까?’라는 생각을 했고, 무모한 생각으로 세상을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겠다는 생각은 TBWA 0팀에서 싹을 틔워 한 케이블 TV의 <오 진짜 짧은 다큐>로 태어났다.
“과거에는 다중이 모여 있는 텔레비전이나 신문 매체를 통해 메시지를 전하면 됐지만, 지금은 다중이 스스로 찾아오게 만들어야 하는 시대가 됐어요. 전 이걸 ‘Push Massage’와 ‘Pulling Massage’라고 하죠. 하지만 세상에는 볼 것과 할 게 너무 많아요. 사람들을 모으기가 쉽지 않죠.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콘텐츠예요. ‘내가 좋은 콘텐츠를 갖고 있나’, ‘내가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나’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됐어요.”
좋은 콘텐츠는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박웅현 CCO가 협업을 강조하는 이유다. 창의성 또한 협업을 바탕으로 탄생하는 것. 그러려면 연성화된 조직문화가 중요하다.
“광고는 혼자만의 힘으로 완성할 수 없어요. 광고뿐 아니라 각자의 역량을 갖고 함께 일하는 분야에선 협업이 기본입니다. 처음부터 열렬히 손뼉 칠만한 아이디어가 나오기란 쉽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의 생각과 의견이 교차하면서 창의적인 생각이 탄생하죠. 그러려면 조직을 연성화시켜야 해요. 회의 시간에 ‘오른쪽부터 돌아가면서 얘기해 봐’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야 하고, 상사의 의견에 부하직원이 ‘그게 말이 되나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없고, 생각을 알 수 없으면 다른 사람의 생각과 섞일 수 없죠. 이런 문화가 TBWA KOREA의 DNA가 되고 있습니다.”
창의력은 실행력에서 나온다
박웅현 CCO는 저서 <안녕 돈키호테>에서 창의력의 근원에 대해 “창의력은 발상이 아니라 실행력이다”라고 말했다. 창의력에 대해 지속적인 질문을 받아온 그가 지난 30여 년의 세월 끝에 얻은 답이다. 생각하기는 쉽지만 생각을 ‘실행하는 힘’은 어렵다는 맥락에서다. 그가 전하는 실행하는 힘은 말하자면 ‘돈키호테력(力)’이다. 반대를 무릅쓸 용기와 고집, 무모와 끈기다.
“시도하지 않은 것이 창의적이라 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시도해 보지 않았다는 건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위험한 게 싫으면 안전한 곳으로 들어가죠. 그래서 저는 ‘Creativity’의 반대말은 ‘Safety’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용기가 필요하죠. 가령, 어떤 아이디어가 있는데 예산이 부족해서, 상사가 싫어할 것 같아서, 유관부서와 불편할 것 같아서 주저한다면 그냥 평범한 것밖에 안 나오죠. 작은 발상이더라도 이를 실행하기 위해 예산을 확보하려 노력하고, 상사를 설득하고, ‘내가 매 한번 맞고 가겠다’는 정신이 있을 때 창의적인 것이 나와요. 제가 말하는 ‘돈키호테력’이 바로 이것입니다. 무모함이 없다면 창의성도 없습니다.”
30여 년 광고 인생 중 3분의 1을 ‘싸움닭’으로 살아왔다고 말하는 그이기에 공감이 가는 대목이었다. “카피가 왜 이렇게 어렵냐”는 말도 숱하게 들었지만, 그는 쉽게 쓰면서 포기하는 대신 대안을 만들어갔다.
박웅현 CCO는 우리 사회가 창의적이려면 평범한 발상을 기어코 창의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윗사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발상하는 일보다는 결정하고 결단하는 윗사람의 역할이 더 크기 때문. 더불어 윗사람은 후배 또는 부하직원의 다양한 얘기를 들어줘야 하고, 그들의 말을 사주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저는 아이디어 회의가 있을 때 ‘자, 생각한 거 얘기 한번 해 봐!’라고 하지 않고 일상적인 대화부터 풀어나갑니다. 그리고 후배의 말 중 뭔가 괜찮은 게 있으면 ‘어, 그거 괜찮은데!’, ‘그걸 조금만 바꿔보면 좋은데!’ 식으로 풀어갑니다. TBWA KOREA에서는 아이디어 없이 회의실에 들어오는 건 괜찮지만, 회의실에서 말이 없으면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죠.”
박웅현 CCO는 앞으로 광고인들이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조직이 아닌 재미있고 보람이 있어서 일하는 조직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그런 조직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이 생겨날 수 있도록 마중물 역할을 하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내가 매 한번 맞고 가겠다’는
정신이 있을 때 창의적인 것이 나올 수 있어요.
제가 말하는 ‘돈키호테력’이 바로 이것입니다.
무모함이 없다면 창의성도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