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준이 쏘아 올린 작은 인공위성?
송호준 작가의 작업실은 발 디딜 틈 없이 온갖 잡다한 물건들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언론매체에서 봤던 예전 사진들과 변함없는 모습으로 우리를 반기는 송호준 작가는 LS산전에서 왔다는 이유로 반갑게 우리를 환대했다. 그 이유는 그의 작업이나 전시회에서 LS산전의 부품들은 너무도 소중한 쓰임새를 자랑하는 도구들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끝낸 ‘On Off Everything 프로젝트’ 역시 50개의 콘센트를 연결해 전자기계장치들을 끄고 켜는 전시였던 만큼 LS산전 제품들은 거의 절대적이라고 할 만큼 비중이 컸다.
“LS산전은 제게는 소중한 화방 같은 곳이에요. 꼭 필요한 부품들을 좋은 가격, 좋은 품질에 살 수 있으니까요. 전시회에서 썼던 RS485 전용통신케이블도 수입산으로 샀다면 훨씬 비쌌을 제품이었죠.”
송호준 작가의 미소를 뒤로하고 만나기 전부터 궁금했던 지난 2013년에 쏘아 올렸던 인공위성 이후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묻자 송작가의 표정이 대번에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뒤 정말 많은 언론매체들과 만났는데 그때마다 제가 꼭 했던 말이 있었어요. 그런데 대부분 실린 적은 없었죠. 전 인공위성을 꿈과 희망, 도전, 영웅 정신으로 쏜 게 아니었어요. 그 어렵다는 인공위성을 기존의 교육시스템이나 사회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도, 이를테면 오픈소스, 인터넷 지식 등을 이용해서도 쏠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언론에서는 제 프로젝트를 제의도와는 다른 방식으로 픽업을 했고 그 덕분에 저는 원래 목표와는 별도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확실히 인공위성으로 대중들에게 각인된 이후 많은 기회가 주어졌고 직접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자리는 많아졌지만 결국 받아들이고 많은 편의를 누릴 것인가. 아님 적극적으로 거부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LS산전 제품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인간의 삶과 너무 밀접하게 맞닿아있기
때문이에요.”라며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LS산전과 콜라보 작업을 하고 싶다며
그의 눈이 별처럼 초롱초롱 빛난다”
평범한 우리가 만드는 세상을 꿈꾸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 속 위인과 철학자의 삶에 대해서 공부하기 시작했고, 다른 관점으로 들여다보니 또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우리가 역사를 만들어가는 과정, 사회적으로 멋진 한 사람의 영웅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폭력적일 때도 있고 진실에 기반해 있지 않기도 하잖아요. 그런 것들을 그냥 즐기면서 살 것인가. 적극적으로 비판하면서 살 것이냐 같은 고민을 또다시 하게 된 거죠.”
그리고 이는 송호준 작가의 작품 활동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작가의 작품이 온전히, 절대적으로 그 사람만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해 파고 들어가다 보니 이는 어쩌면 천재라는 전제가 깔린, 기만적인 행위가 될 수 있다는 데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이다.
“작가들의 작업이 놀라운 금액으로 팔리는 경우가 있잖아요. 사실 그 작품은 드라마를 보다가 생각했을 수도 있고, 인터넷 짤방을 보다가 떠올릴 수도 있고,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 나올 수도 있죠. 그런데 아마 그 사람은 절대 그걸 말하지 않을 거예요. 격이 떨어질 테니까요.”
그래서 송호준 작가는 인공위성 이후로 나만의 것이 아닌 여러 사람들의 생각과 참여를 잘 섞어놓은 것 같은 재밌는 전시가 되길 바라게 되었다. 최근 서촌에 위치한 무목적 갤러리에서 열린 ‘On Off Everything 프로젝트’ 전시회의 경우 송 작가는 껐다 켰다 하는 전기장치를 만들어 사람들을 초대해 모으는 역할을 했고 관람객들은 각자 자기가 들고 온 작품들을 콘센트에 꽂아 불을 밝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요? 간판을 들고 오신 분이 계셨어요. 공사를 끝내고 이걸 어쩔까 하던 약국 간판을 들고 오셨더라고요. 하하.” 자신이 아이디어를 내고 판을 깔았지만 프로젝트의 완성은 결국 함께했던 관객의 몫이었다며 자신의 전시회를 환하게 웃으며 설명했다.
경험과 조합을 통해 만들어가는 진짜 변화
AI를 좋아하는 작가로서, 현실에 발을 딛고 선 아티스트로서 그는 늘세상의 변화에 큰 관심을 기울이는 인물이다. 변화를 예술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보면 매우 당연한 일처럼 느껴지지만 의외로 송작가는 “자신이 바라보는 미술이나 매체는 변화를 거의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일갈을 한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을 테마로 삼고 있는 작가가 있다면 인공지능 툴을 쓰는 작가인 거지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어떤 생각의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해 말하는 작가는 드물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변화를 인식하기 위해 그는 어떤 방법을 쓰는 걸까? 그의 답은 단순하고 자유로웠다. 유튜브, 질문, 논쟁, 토론, 대화, 하다못해 고기를 잘 낚는 낚시꾼에게까지- 보고 듣고 질문하며 느낀다는 것이다. 송 작가는 직관이나 천재를 믿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오히려 천재, 영웅 문화를 적극적으로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라고 말했다.
“이세돌과 대결했던 알파고의 핵심은 많은 데이터였어요. 크고 작은 경험과 이야기, 이상한 조합들이 직관을 만들어 내는 거지요. 엘리트주의나 소수의 특출난 사람이 대중을 이끌어 간다는 생각들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송 작가는 경험과 조합을 통해 직관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다양한 취미, 여행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변화의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산 잘하고 명석한 두뇌는 시뮬레이션과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거예요. 하지만 예외를 만드는 사람들은 절대 데이터 범주 안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LS산전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묻자 “LS산전 제품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인간의 삶과 너무 밀접하게 맞닿아있기 때문이에요.”라며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LS산전과 콜라보 작업을하고 싶다며 그의 눈이 별처럼 초롱초롱 빛난다.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을 만나고 꿈꾸고 있는 송호준 작가의 새로운 변화를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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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전인과 송호준 미디어아티스트의 현문현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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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을 전공하셨는데 예술을 꿈꾸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지금은 ‘메이커’라는 말이 있지만 당시엔 없었습니다. 내가 만든 무엇인가가 컴퓨터와 연결된다는 것이 저에겐 너무나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대학원에서 처음으로 마이크로컨트롤러, 칩을 다루는 걸 개인적으로 공부했고 전시에 불려 다니기 시작하면서 예술을 꿈꾸게 되었어요.
미디어아티스트 뒤에 왜 물음표(?)를 붙이게 되었나요?요즘 생각해보니까 호칭이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불러주고 생각하는지 그에 따라 다르게 불리다 보니까 예술가, 작가라는 호칭을 갖게 되었어요. 미디어작가라고 하면 미디어로만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 고민 끝에 ‘미디어아티스트(?)’라고 호칭을 요청드렸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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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작품 활동을 많이 하셨는데 앞으로의 작업 계획이 궁금해요.
불확실한 생각들을 드러내는 랜덤, 우연, 실패, 비인과적인 작업들을 해보고 싶어요. 저는 실패도 에너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뻔한 생각으로는 다다를 수 없는 결과가 있으니까요. 너무 시니컬하지 않은 즐거운 상황을 만들어가는 작업을 계속 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