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24년의 반이 지나갔네요. 올해 클래식 음악계에는 베토벤 교향곡 9번 초연 200주년부터 안톤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 등 굵직한 이벤트가 많아요. 상반기에 이미 다양한 공연이 열렸지만,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하반기 놓쳐선 안 될 클래식 공연들을 모아봤어요.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인 1824년 5월 7일,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케른트너토르 극장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바로 베토벤 교향곡 9번입니다. 9번은 베토벤 자신의 인생뿐만 아니라 음악사에 있어서도 아주 의미 있는 작품이에요. 베토벤은 교향곡 8번 이후 12년 만에 이 곡을 완성했는데요, 초연 당시 53세였던 그는 이미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어요. 청력 손상을 견뎌내며 악전고투 끝에 완성한 9번 작품은 결국 그의 마지막 교향곡이 되었죠. 9곡의 교향곡은 하이든(100곡), 모차르트(41곡), 베토벤으로 이어지는 빈 고전파의 계보 속에선 매우 적게 느껴지는 작품 수예요. 그러나 베토벤은 단 9곡의 교향곡으로 고전주의 음악의 절정을 달성하였고, 마지막 교향곡으로는 끝내 고전주의 형식을 스스로 파괴하며 낭만주의의 등장을 예고했어요.
12월 19일 - 롯데콘서트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향곡으로 꼽히는 교향곡 9번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곡이에요. 4악장에 등장하는 합창 때문이죠. 베토벤은 관현악에만 의존하던 교향곡에 최초로 성악을 도입하며 기존 양식을 파괴했는데요. 4악장에 등장하는 대규모 합창단의 성악 파트는 클래식에 문외한인 사람에게도 통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선율로 이루어져 있어요. 서울시향은 매년 12월 연례행사로 이 곡을 연주해오고 있어요. 국내 초연은 1948년이었고, 80년대에 들어서며 송년 음악회의 단골 레퍼토리로 자리잡았죠. 2000년대 정명훈 예술감독이 서울시향을 이끌던 당시 이 곡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됐고, 그 후 서울시향은 매년 이 곡을 무대에 올리고 있어요. 초연 200주년을 맞은 올해에는 서울시향의 연주가 더욱 기대되네요.
10월 8일 - LG아트센터
혁명과 낭만 오케스트라는 영국의 저명한 지휘자 존 엘리엇 가디너가 고음악(시대악기 연주, 역사주의 연주 등으로도 부름) 연주를 위해 창단한 오케스트라예요. 고음악은 작곡 당시의 악기와 주법으로 연주하는 흐름을 말하는데요. 바이올린에 양의 창자를 꼬아 만든 ‘거트현’을 쓴다거나, 기록에 따라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리며 지휘하기도 합니다. 이 오케스트라는 1994년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녹음한 앨범을 냈는데요. 이 앨범에 수록된 교향곡 9번을 추천드려요. 만약 이 오케스트라 버전의 연주가 마음에 들었다면 10월에 열릴 베토벤 교향곡 2, 3번 공연에 찾아가보는 것도 좋을 거예요.
<Ode to Freedom-Bernstein in Berlin>, 레너드 번스타인,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외
베를린 장벽 붕괴 6주 후인 1989년 12월 25일, 콘체르트하우스 베를린에서 장벽 붕괴를 기념해 베토벤 교향곡 9번 공연이 열렸는데요, 이 앨범은 당시 공연을 녹음한 실황 앨범입니다. 레너드는 4악장 합창의 가사로 쓰인 쉴러의 시 ‘환희의 송가’를 ‘자유의 송가’로 바꾸어 불렀고, 화합의 가치를 상징하기 위해 오케스트라를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런던 심포니, 키로프 오케스트라, 뉴욕 필하모니 등 각국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모아 구성했다고 해요.
<Beethoven: 9 Symphony>, 존 엘리엇 가디너, 존 엘리엇 가디너-혁명과 낭만 오케스트라
앞서 언급한 앨범이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웅장한 사운드를 들려준다면, 이 앨범은 그보다는 규모가 작은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주는 느낌을 비교해볼 수 있는 앨범이에요. 특히 이 앨범은 실황 앨범에 비해 매우 짜임새 있고 군더더기 없는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아주 격정적이고 스피디하게 연주되는 4악장을 들어보면 같은 곡이라도 지휘자의 해석에 따라 곡의 분위기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클래식 애호가들이 쓰는 속어가 하나 있는데요. 브루크너, 말러, 바그너의 머리글자를 딴 BMW입니다. 이들을 묶어서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19세기 후기 낭만주의를 대표했던 이들은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는데, 특히 바그너가 브루크너와 말러에게 큰 영향을 미쳤죠. 베토벤의 등장 이후 고전음악을 계승하고자 했던 브람스와 달리 바그너는 “베토벤 교향곡 9번보다 더 훌륭한 교향곡이 나올 수는 없다”며 교향곡 대신 음악극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집중했어요. 바그너가 선보인 대규모 관현악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교향곡 세계를 완성한 이들이 바로 브루크너와 말러예요. 특히 브루크너는 바그너로 인해 교향곡 작곡을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6월 28일 - 광주예술의전당
12월 12~13일 - 롯데콘서트홀
오르간 연주자였던 브루크너는 30대에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를 본 후 그의 열렬한 신봉자가 되었어요. 브루크너는 바그너와 편지로 교류했는데, 그때 바그너가 브루크너에게 교향곡 작곡을 권유했다고 해요. 뒤늦은 나이에 교향곡 작곡에 뛰어들었으나 교향곡 6번에 이르기까지 브루크너는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했어요. 1883년 그의 나이 58세에 교향곡 7번이 발표되는데, 이 작품으로 그는 비로소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돼요. 교향곡 7번의 2악장은 바그너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곡으로 알려져 있어요. 브루크너가 이 곡을 작곡할 당시 바그너의 타계 소식을 들었다고 해요. 브루크너는 2악장에서 바그너의 음악극에 즐겨 쓰이던 ‘바그너 튜바’를 사용했고, 2악장은 비통하고도 장엄한 선율로 구성되어 있어요.
피아니스트 출신 지휘자인 크리스토프 에셴바흐는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은 사람이에요. 2016년 정명훈 음악감독이 서울시향을 사임한 직후 서울시향의 객원 지휘자를 역임했었죠. 브루크너의 열렬한 팬으로 꼽히는 에셴바흐는 당시에도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무대에 올렸었어요. 그는 2018년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과 함께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연주했었는데, 그때의 연주가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공식 채널에 고화질 영상으로 업로드되어 있어요. 에셴바흐가 해석한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지금 바로 확인해보세요.
7월 18일 - 예술의 전당
그 후에 작곡된 교향곡 8, 9번은 7번과 함께 브루크너 교향곡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작품들로 손꼽혀요. 그러나 교향곡 7번을 완성할 당시 이미 노년에 접어들었던 브루크너는 9번을 완성하지 못한 채 사망했고, 그래서 이 작품은 3악장으로만 구성되어 있어요. 바그너가 선보인 대규모 관현악을 통해 인생 후반기를 교향곡에 대한 열정을 품고 살았던 브루크너. 역시 바그너에게 영향을 받았던 말러가 거대한 규모의 사운드에 다소 염세주의적인 세계관을 담았다면, 브루크너의 교향곡에는 불안이 없어요. 일평생 굳건한 신앙심을 간직하며 살았던 사람이기에 그의 음악은 거대하지만, 말러의 음악처럼 고통과 환희를 불안히 오가지 않고 초연하죠. 자극적인 드라마가 다소 피로하게 느껴질 때 완벽하게 조율된 세계에서만 가능한 안정감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안톤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꼭 한번 들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