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파키스탄에서 발생한 홍수로 1,200여 명이 사망하고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겼다고 해요. 우리나라도 얼마 전 폭우 피해를 겪었죠. 영국, 프랑스 그리고 미국은 올여름 46도까지 치솟는 폭염으로 몸살을 앓았어요. 이러한 이상 기후 때문에 요즘 에너지저장장치(Energy Storage System, 이하 ESS)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데요. 이상 기후와 ESS,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가파른 성장세
화력 발전소는 필요한 때에 화석 연료를 태우는 방식으로 에너지를 생산하죠. 이에 반해 태양광, 풍력 등 재생 에너지 발전소는 기후에 의존하기 때문에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의 에너지를 생산하기가 어려워요. 여기에 이상 기후 현상까지 더해진다면 계통의 불안정성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겠죠? 이 때문에 재생 에너지엔 잔여 에너지를 저장해두었다가 필요한 때 쓸 수 있는 ESS가 필수적이에요. 시장조사기관 블룸버그 NEF가 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말 17GW로 집계된 ESS 누적 설치 용량은 2030년 358GW로, 10년 사이 21배 늘어날 것으로 보여요.
#가정용 ESS
미국, 유럽, 일본, 중국의 ESS 시장은 자국 정책의 변화에 따라 성장세에 부침이 있긴 해도, 꾸준히 성장하는 중이에요. 특히 미국과 중국이 ESS 시장의 양대 강자로 꼽히죠. ESS 시장이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나라들에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바로 가정용 ESS 시장의 급성장이에요. 우리나라는 한국전력의 독점 구조로 전 지역의 전기요금이 동일하고 저렴한 편이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은 여러 곳의 전기 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개인이 선택하는 구조라 전기요금이 지역별, 개인별로 다른 경우가 많아요. 이러한 나라들에서는 전기요금 절감과 잉여전력 판매를 통한 부가 수익 창출 등을 이유로 가정용 ESS의 수요가 높아지고 있어요. 특히 미국은 단독주택의 여유 공간에 ESS를 설치하기가 용이해 시장이 더욱 폭발적으로 성장 중이죠.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내비건트 리서치는 전 세계 가정용 ESS 시장이 2019~2024년 연평균 44%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어요.
#정체된 시장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상황이 어떨까요? 우리나라도 ESS 시장이 급성장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2018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ESS 설치 용량이 전년 대비 20배 이상 증가해, 1.8GWh를 기록했는데요. 2019년에는 시장 규모가 전년 대비 33.9% 감소하며 가파른 하락세를 그렸어요. 가장 큰 원인으로는 빈번한 화재 사고가 꼽혀요. 2017년 이후부터 올해 초까지 국내에서는 30여 건이 넘는 ESS 화재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되었는데요. 그동안 화재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그 불안정성으로 인해 민간 ESS 시장은 거의 고사 상태에 이르게 되었죠. 또한 ESS에 대한 세제 혜택과 신재생공급인증서(REC) 가중치 적용 등의 정부 지원책이 사라지며 기업들이 시장에 뛰어들 요인도 줄었어요.
한편 해외 시장에 진출한 국내 기업의 상황은 좀 다른데요. 유럽 ESS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상위 3개 기업 중 두 곳이 국내 기업이라고 하죠. 국내 모 기업은 최근 미국 텍사스에 380MWh 규모의 대규모 ESS 단지의 개발을 시작하기도 했어요. 이를 보면 국내 기업의 기술 수준에는 문제가 없어 보여요. 다만 다수의 전문가는 운용 능력에 있어선 극복해야 할 과제가 있다고 지적해요. 해외에서는 ESS 전용 건축물의 시공 기준이 엄격하고 시운전 기간도 최대 2개월에 달하는 등 안전성을 철저히 검증하거든요. 정부가 최근 ESS 안전 강화 대책을 발표했고, 국내 기업들의 운영 노하우도 점차 쌓여 갈 테니, 조만간 ESS 시장의 회복을 기대해봐도 되겠죠?
8월 초부터 미국 하원과 상원을 차례로 통과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이하 IRA)’이 8월 16일 조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으로 발효되었어요. 바이든 대통령의 핵심 대선 공약이었던 ‘더 나은 재건 법안(Build Back Better Act)’의 축소안인 IRA는 보건에서 청정 에너지, 조세까지 다양한 법안을 포괄하고 있는데요. 자국 기업뿐만 아니라 해외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여러 나라가 주목하고 있어요. IRA가 국내 기업에 미칠 영향을 정리해봤어요.
#더 나은 재건
3조5,000억 달러에서 1조7,500억 달러 규모로 축소되었던 더 나은 재건 법안은 작년 11월 하원을 통과하였으나, 민주당 내 중도파 상원의원인 조 맨친의 반대로 좌초되었었죠. 그 후 여론을 살피며 7,400억 달러까지 예산 규모를 줄여나갔는데요, 올해 7월 맨친 의원이 입장을 바꾸며 무려 한 달 만에 법안이 상·하원을 빠르게 통과했어요. 어렵게 통과된 이 법안의 취지는 이름 그대로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는 건데요. 법안에 반대했던 맨친 의원은 정부의 재정 지출이 증가한다면 오히려 인플레이션이 악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었죠. 반면 바이든 행정부는 복지 지원을 골자로 하는 본 법안을 통해 가계 소비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정반대의 논리를 펼쳤어요. 또한 본 법안은 대기업과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안을 포함하고 있어 그 자체로 예산을 마련하는 방법이 담겨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죠. 올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렇게 바이든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 무대 위에 올랐습니다.
#재생 에너지
본 법안에는 해외 기업들에도 영향을 주는 내용이 담겼는데요. 가장 논란이 되는 건 청정 에너지 법안 중 친환경 에너지 발전 지원책과 전기차 세액 공제 부분이에요. 우선 친환경 에너지 발전 지원책은 국내 기업에게는 희소식이에요. 재생 에너지 설비 및 기술 투자비에 대해 일정 비율의 세액을 공제해주는 ‘투자세액공제’의 적용 세율을 30%로 상향 조정하고, 혜택 기간도 10년 연장한다는 내용의 지원책이 미국 시장에 진출해 있는 국내 기업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이죠. 현재 국내 모 기업이 미국 조지아주에 공장을 운영 중인데, 증권가는 이 기업이 2천600억 원 상당의 세제 혜택을 받을 것으로 추산했어요. 이러한 세액 공제는 곧 미국 친환경 시장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미국에 재생 에너지 관련 부품을 수출하는 기업들도 법안 통과를 반기고 있어요.
#전기차
국내 전기차 관련 기업들의 반응은 어두워요. 미국이 전기차 기업 지원에 자국 생산, 탈중국이라는 조건을 달았거든요. 미국, 캐나다, 멕시코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한해 대당 7,500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고, 전기차 배터리에 사용되는 광물은 미국과 FTA를 맺은 나라에서 40%, 부품은 북미 지역에서 50%를 조달할 경우에만 대당 3,750달러의 혜택을 주겠다고 했어요. 현재 이러한 조건들을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국내 기업은 없어요. 현대차조차 지원 대상 명단에서 빠져 논란이 됐죠. 현대차의 미국 공장 완공 시점인 2025년에 이르면 상황이 좀 나아지겠지만 단기적으로는 손해가 불가피한 상황이에요. 배터리는 상황이 더 안 좋은데요.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7월 국내 배터리의 핵심 광물인 천연흑연, 수산화리튬, 코발트의 90%, 84%, 81%가 모두 중국에서 조달되었어요. 대미 수출을 위해선 공급망 재편이 불가피하죠.
정부는 미국과 협상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미 법안이 통과된 상황에서 세부 내용을 바꾸긴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에요. 일각에선 이번 법안 통과를 급성장하고 있는 미국 재생 에너지 시장을 선점할 기회, 전기차 시장의 강자였던 중국을 따돌릴 기회로 보는 이들도 있어요. 그러나 자유무역의 수호자였던 미국이 중국에 패권을 빼앗길까 불안해하며 자국 무역 보호주의로 돌아서는 상황에서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한 시점임은 분명해 보이네요.
일본 인구가 작년 한 해 72만6,000여 명 줄어 사상 최대 규모로 감소했어요. 인구 감소는 비단 옆나라만의 문제는 아닌데요. 최근 서울대학교가 입학생 감소 문제 해결을 위해 역사상 처음으로 베트남에 해외 분교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거든요. 노동 인력과 소비자 감소라는 측면에서 인구 감소는 기업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는데요. 기업들은 인구 감소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요?
#생산가능인구
인구수보다 기업에 직접적으로 와닿는 수치는 생산가능인구일 거예요. UN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 세계 생산가능인구는 약 51억 명에 달해요. 언뜻 보면 큰 수치처럼 보이지만, 많은 국가가 이미 생산가능인구의 정점을 지나왔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겠죠? 중국의 생산가능인구는 2015년 10억2,157만 명을 찍은 뒤 감소세로 돌아섰고, 한국은 2016년 3,730만 명, 일본은 1995년 8,777만 명이 정점이었어요. 서유럽과 동유럽도 각각 2019년, 2009년에 정점을 찍었죠. 물론 생산가능인구가 여전히 증가세인 국가도 있는데요. 미국은 이민 덕분에 2020년 2억1,514만 명인 생산가능인구가 2050년엔 2억3,180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에요. 인도와 아프리카에서도 생산가능인구가 증가할 것으로 보이고요.
#사람 중심 제조업
2000년대 초반부터 일찍이 인구 감소 문제를 공론화하였던 독일은 인더스트리 4.0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하나 더 있는데요, 바로 노동 4.0이에요. 2008년부터 추진된 이 노동 프로젝트는 사람 중심의 제조업, 사람 중심의 디지털화라는 철학을 담고 있어요. 이 프로젝트를 가장 성공적으로 구현한 사례로 독일 아디다스의 ‘스피드 팩토리’ 공장이 꼽히는데요. 스마트 공장을 도입한다고 하면 대개 일자리 감소를 떠올리죠. 그러나 아디다스는 오히려 스마트 공장을 도입하면서 자국 내 일자리를 늘렸어요. 원래 아디다스는 동남아시아 하청 공장에서 OEM 방식으로 물건을 생산해왔는데요. 스피드 팩토리를 자국 내에 설립하면서 자국 일자리를 늘린 것이죠. 특히 3D 프린터로 5시간 만에 생산 가능한 다품종 소량 생산 시스템을 구축해 적은 인력으로도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해요.
#정년 연장
인구 절벽을 마주하고 있는 옆 나라 일본은 어떨까요? 일본은 2021년 4월부터 정년을 70세로 연장했어요. ‘고령자고용안전법’을 개정해 기업에게 70세까지 노동자를 채용할 노력 의무를 부과했는데요. 정년 퇴직을 맞았던 고령 인력을 재고용하겠다는 것이죠. 일본 대형 가전 유통업체인 노지마는 2020년 65세 이후 80세까지 1년 단위로 계약하며 일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했고, 2021년엔 80세라는 제한 나이마저 사실상 폐지했어요. 노지마는 파견형 판매 인력에 의존하지 않고 점포를 직접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80세 이상도 판매, 본사 업무 등을 수행하는 데 무리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죠. 지퍼 제조업체로 유명한 YKK 역시 65살 정년제를 폐지했어요. 4만4,000여 명의 직원 중 800명이 5년 안에 65살에 이를 것으로 파악되어 내놓은 대책이라고 해요.
일부 전문가들은 인구 감소를 반드시 위기로 볼 필요는 없다고 주장해요. 중요한 건 인구수 그 자체가 아니라 노동 생산성이기에 기술 발전을 잘 이끈다면 얼마든지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죠. 독일의 사례에서처럼 ‘사람’ 중심의 기술 개발이 해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