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에 대한 각국의 군사적 지원이 점차 힘을 잃어가는 모양새입니다. 슬로바키아에서는 얼마 전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을 공약으로 내건 야당이 총선 승리를 거머쥐었고요. 미국 하원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자금 지원을 둘러싼 갈등으로 인해 미 역사상 최초로 하원의장 해임안이 가결되는 일이 벌어졌어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을 짚어봅니다.
#UN 총회
9월 19일, 제78차 UN 총회 일반토의가 미국 뉴욕 UN 본부에서 개막했는데요. 이번 총회에는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처음으로 직접 참석했죠. 그런데 안보리 상임이사국 정상들이 무더기 불참하며 우크라이나 지원 의사가 약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어요. 상임이사국은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5개국으로, 2년 연속 불참한 러시아와 중국은 그렇다 쳐도 지난해와 달리 영국과 프랑스마저 불참한 것은 서방 세계의 결집이 예전만 못하다는 방증이라 볼 수 있어요. 한편 UN 총회 개막을 앞두고 워싱턴포스트에서는 휴전 협상을 촉구하는 개발도상국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는데요. 러시아와 경제 관계를 맺고 있는 아프리카와 중남미 국가들이 대러 제재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고 전쟁 장기화로 인한 피해를 우려하고 있다고 해요.
#케빈 메카시
UN 총회에 참석했던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에서 “우크라이나가 분할된다면 어떤 나라의 독립이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하며 반러 연대 지지를 호소했어요. 그런데 요즘 미국의 내부 사정은 좀 달라요. 10월 3일,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하원의장이 임기 도중 해임되는 사태가 발생했어요. 발단은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이었는데요. 내년도 연방정부 예산안 의결을 앞두고 대치 중이던 양당이 막판 협상 끝에 임시 예산안을 통과시켰는데, 예산안 처리 직후 공화당 내에서 후폭풍이 있었어요. 당내 강경파인 맷 게이츠 의원이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두고 케빈 메카시 하원의장과 민주당 사이에 이면 합의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해임 결의안을 의회에 제출했거든요. 민주당 다수와 공화당 강경파 소수가 찬성표를 던지며 해임안은 결국 가결됐는데요. 공화당 내에서도 중도파로 분류되는 메카시 의원이 밀려남에 따라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처리는 더욱 불투명해졌어요.
#슬로바키아와 폴란드
우크라이나 때문에 속내가 복잡한 건 미국뿐만이 아니에요. 슬로바키아는 그동안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해왔는데요. 10월 1일, 우크라이나 지원 반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친러시아 성향의 스메르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며 대우크라이나 정책이 급선회할 것으로 보여요.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동맹국 중 하나였던 폴란드 역시 얼마 전 무기를 더 이상 지원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어요. 여기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곡물 분쟁이 얽혀 있는데요.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가 대체 육로로 곡물을 수출하게 되면서 유럽 중부 지역에 곡물이 대량으로 몰리게 됐고, EU는 역내 농산물 가격 하락을 우려해 폴란드를 포함한 5개국의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입을 일시적으로 금지했어요. 우크라이나가 지난 UN 총회에서 이러한 조치를 규탄하자, 폴란드는 전쟁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온 동맹국에 부당한 대우라며 지지 철회 의사를 밝힌 것이죠.
미국이 연방정부 폐쇄 즉 셧다운을 겨우 모면했습니다. 9월 30일은 미국 의회의 내년도 예산안 합의 마감일이었는데요. 29일 임시 예산안이 하원 본회의에서 부결되며, 셧다운이 발생하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어요. 30일 다행히 상·하원에서 임시 예산안을 잇달아 의결했는데요. 미국 셧다운 위기의 배경과 올해 예산안 처리 전망을 살펴봤어요.
#예산법률주의
거의 모든 국가가 1년 단위로 정부 예산을 짜는데요, 이 1년의 단위를 회계연도라 불러요. 그런데 국가별로 회계연도가 시작되고 종료되는 시점이 달라요. 우리나라는 1월부터 12월까지가 회계연도인 반면 미국은 10월부터 9월까지죠. 우리나라는 예산안 편성권은 정부에, 예산안 심의 및 의결권은 국회에 있는 반면 미국은 예산을 법으로 규정하는 예산법률주의를 택하고 있어 의회가 예산을 편성하고 심의하는 권한을 모두 가져요. 양당제인 미국은 그래서 9월만 되면 공화당과 민주당이 예산안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크게 충돌하죠. 셧다운은 양당이 의견 합치에 실패해 임시 예산안마저 의결하지 못하고 예산안 처리 마감일을 넘기게 될 경우 발생하는 단계인데요. 법으로 정한 예산을 초과해 지출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적자방지법(Antideficiency Act)에 의거해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필수 영역만을 남겨두고 나머지 정부 인력은 전부 강제 휴가에 돌입하게 돼요.
#프리덤 코커스
민주당과 공화당의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미국은 셧다운 위기에 자주 직면할 수밖에 없어요. 9월 30일 케빈 메카시 하원의장이 제안한 임시 예산안이 하원과 상원에서 가까스로 통과되며 미국은 셧다운 위기를 모면하긴 했지만, 공화당은 내홍에 시달려야 했어요. 올해 5월 양당은 2024년 연방정부 지출 총액을 두고 한 차례 합의한 바 있는데, 이른바 ‘프리덤 코커스’라 불리는 공화당 내 10명 남짓한 강경파 의원들이 정부 지출을 대폭 삭감해야 한다고 끈질기게 반대했거든요. 미국 내 언론들은 11월에 셧다운 가능성이 다시 대두할 수 있다고 전망했어요. 임시 예산안 효력이 끝나는 11월 양당은 다시 한번 예산안 합의를 도출해야 하는데, 미국은 현재 ‘민주당과 공화당’이 아니라 ‘민주당과 공화당, 공화당 강경파’로 갈라져 있어 조율이 어려울 것이라 내다본 거죠.
#전례 없는 규모
10월 25일 미국 하원에서는 공화당 마이크 존슨 의원을 의장으로 선출했어요. 미 의회 역사상 처음이었던 하원의장 해임으로 하원의장석은 3주 넘게 공석이었는데요. 하원의장 선출 과정도 꽤나 시끄러웠어요. 공화당의 스티브 스컬리스 원내대표, 짐 조던 법사위원장, 톰 에머 원내총무가 연달아 낙마했거든요. 공화당 내 온건파가 후보를 추천하면 강경파가 반대하고, 강경파가 추천한 후보를 온건파가 반대하는 식이었어요. 한편 이런 와중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이스라엘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조 바이든 대통령은 19일 대국민 연설에서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는 미국 안보에 필수적”이라며 두 나라를 지원하기 위한 “전례 없는 규모”의 예산을 신청할 것이라 밝혔는데요. 뉴욕타임즈는 이 긴급 안보 예산이 1천억 달러(한화 약 135조 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어요. 신임 하원의장인 마이크 존슨은 무명에 가까운 인물이긴 하지만 친트럼프 의원으로 분류돼요. 신임 의장 취임 직후 하원에서는 이스라엘 지지 내용을 담은 결의안이 채택되긴 했는데, 예산안이 어떻게 처리될지는 두고봐야 할 거 같아요.
EU가 세계 최초로 마련한 탄소국경조정제도 (이하 CBAM)가 10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CBAM은 EU로 수입되는 철강, 시멘트 등의 품목에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에 대한 관세를 부과하는 정책인데요. CBAM이 국내 기업에 미칠 영향을 정리해봤어요.
#여섯 개 품목
CBAM이 시행되긴 했으나 EU는 2023년 10월 1일부터 2025년 12월 31일까지 전환 기간을 두기로 했어요. 이 기간에는 기업에게 분기별 탄소 배출량 보고 의무만 부여됩니다. 2026년 1월 1일부터는 확정 단계에 돌입하며, 이때부터는 탄소 배출량에 따른 관세를 부과하게 되죠. 관세 부과는 EU로 들어오는 제품에 내재된 배출량 1톤당 1개의 인증서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요. 인증서 가격은 EU 탄소배출권거래제(이하 ETS)와 연동해 ETS 배출권 경매 종가의 주당 평균 가격을 적용할 예정이에요. EU가 정한 CBAM 적용 품목은 시멘트, 전력, 비료, 철강, 알루미늄, 수소 총 여섯 가지로, 적용 범위를 점차 늘려가겠다고 밝혔어요. 탄소집약적이고 배출량 측정이 용이한 품목에서부터 제도를 시행한 것으로 보여요.
#상계관세
EU가 왜 이런 제도를 채택한 건지 잠깐 짚고 넘어가볼까요? CBAM은 상계관세와 유사한 성격의 제도예요. 상계관세란 예를 들어 외국의 기업이 우리나라로 제품을 수출하려 할 때 만약 수출국으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해당 제품이 국내 제품보다 경쟁력이 높을 경우 국내 산업이 입을 피해를 우려해 보조금과 유사한 수준의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예요. 공정 경쟁을 위한 제도인 거죠. 현재 전 세계 탈탄소 로드맵의 근간이 된 ‘파리 협정’은 국가별로 탄소 감축 목표를 자발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기조로 삼고 있어요. EU가 우려하는 건 무임승차 문제예요. 탈탄소 규제에 다소 느슨한 국가의 상품이 자국으로 유입될 경우 자국 기업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거죠. 자국 기업들은 이미 국가 정책에 맞춰 탈탄소 비용을 지출한 상태이니까요.
#모니터링 시스템
당장 우리나라 기업들은 해당 품목을 EU에 수출할 때 탄소 배출량을 보고해야 해요. 엄밀히 말하면 탄소 배출량 보고 의무는 EU의 수입 기업에게 있어요. 보고 의무가 주어지니 이 수입 기업들이 수출 기업에 정보를 요구하는 방식인 거죠. EU 기업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하려면 정보를 측정할 시스템이 있어야겠죠? 이는 국내 기업이 탄소 배출량 산정에 필요한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예요. 국내 기업들이 모니터링해야 할 정보는 직접 배출량, 소비 전력에 의한 간접 배출량 등이에요. 그런데 10월 12일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300개 제조 중소기업 중 CBAM을 파악하고 있는 곳은 21.7%에 불과해요. CBAM의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 있는 142개 기업 중 54.9%는 ‘특별한 대응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고요. 전문가들은 탄소 배출 규제를 EU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캐나다 등에서도 검토하고 있는 만큼 모니터링 시스템을 신속하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