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혹은 공동체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나요? 내부 문화나 규칙, 지향점 등을 바꾸어야 할 때, 어떻게 하면 그 길이 옳은 길이라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토머스 모어의 저서 <유토피아>에서 그에 대한 힌트를 찾아보려 합니다. (사진: <유토피아> 초판본(1518년)에 수록된 유토피아 섬의 지도 / 출처: VTOPIAE INSVLAE TABULA, Universitätsbibliothek Basel, CC BY)
<유토피아>는 16세기 초 영국 사회 전반으로 퍼져 나가던 부의 독점과 빈곤 현상을 비판하기 위해 쓰인 작품이에요. 모어는 이 책을 1부와 2부로 구성해, 1부에서는 현실세계의 부조리를 지적하며 변혁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2부에서는 그 변혁이 실현된 사회의 예시로서 유토피아라는 섬나라를 소개하고 있어요. 모어가 이 책에서 의도했던 것은 두 가지예요. 사람들이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고, 그 해결책에 관해 숙고해 보길 원한 거죠. 사실 이 책에 등장하는 유토피아를 이상세계 자체로 받아들이기엔 어려움이 있어요. 이곳은 사유재산과 화폐가 없고, 금은 요강을 만드는 데 쓰이며, 나체로 선을 보는 등 이상한 구석이 많은 나라거든요. 우리가 이 책에서 취할 수 있는 건 유토피아 자체보다도 유토피아를 설득하는 방식일 거예요. 가상의 여행가가 등장하고, 그 여행가와의 논쟁으로 문제를 제시하며, 여행의 후일담을 전하듯 유토피아를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는 등 이 책의 구성은 아주 독특하고 흥미로워요. 왜 모어가 변혁을 주장하는 데 이러한 방식을 택했는지 그럼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할까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바꾸자고 제안할 때 한 가지 각오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반감이에요. 목표와 현실세계의 간극이 클수록 사람들은 그 목표를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커요. 이 점을 알고 있었던 모어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논의를 시작합니다. 유토피아를 소개하기에 앞서 유토피아에 대한 반론을 먼저 거론한 것이죠. 대화 형식으로 구성되는 1부에서 포르투갈 선원 라파엘 히슬로다에우스가 사유재산 없이도 모두가 풍족한 삶을 누리는 나라인 유토피아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모어가 곧바로 사유재산 없이 어떻게 물자가 풍부할 수 있냐는 반론을 제기합니다. 모어는 이 책에 담길 메시지가 당시 영국 독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자신의 주장이 진지하게 취급되길 바랐던 거 같아요. 그는 라파엘의 입을 빌려 독자들에게 부드럽게 조언합니다. “당신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상태에 대해 전혀 생각해본 적 없거나 혹은 잘못된 생각을 하기 때문이죠. 당신은 나와 함께 유토피아에 가서 그들의 관례와 관습을 직접 보았어야 해요.”
2부에서는 라파엘이 자신이 여행했던 유토피아를 상세하게 묘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2부 초반에 이 책의 핵심 테제가 등장해요. 라파엘은 유토피아의 노동 관습에 관해 설명하며 “이 나라의 헌정 최고 목표는 공공의 필요만 충족되면 모든 시민이 최소한의 육체노동을 하고 자유를 향유하며 정신적 교양을 쌓는 데 헌신하는 것”이라 밝힙니다. 이에 따르면 모어가 생각하는 ‘가장 훌륭한 공화국’이란 최소한의 육체노동과 정신적 삶의 확장이라는 국가 최고 이념을 경제적 평등이라는 구조를 통해 실현한 나라로 보여요. 이 핵심 테제가 제시된 후에 라파엘은 본격적으로 유토피아의 노동 관습, 사회관계, 종교, 전쟁 등을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는데요. 이 핵심 테제가 길잡이 역할을 해준 덕분에 라파엘을 따라 유토피아 여러 곳을 구경하면서도 무엇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할지 알 수 있어요.
앞서 토머스 모어가 사유재산 없이 어떻게 물자를 풍족하게 생산하느냐는 반론을 제기했었죠? 이젠 그에 대한 답을 확인할 차례입니다. 모어는 라파엘의 눈을 통해 사람들이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을 먼저 보여준 후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들을 설명해요. 우선 하루 6시간만 일하는 유토피아 사람들의 일상이 자세히 보여집니다. 유토피아에서는 남녀노소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이 농업에 종사해요. 그리고 농사일 외에 석공, 목공일 등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나 더 하죠. 하루 노동이 끝나면 나머지 시간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활용할 수 있어요. 또한 이 나라에선 식구 및 가구 수가 법령 기준을 초과하면 다른 가구나 도시로 이전시켜요. 섬 전체의 인구가 많아지면 다른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해 사람들을 이주시킵니다. 유토피아의 일상은 노동의 의무화와 인구수 제한이라는 법령 덕분에 유지됩니다. 이러한 제도가 있어 사람들은 불필요한 노동에서 벗어나면서도 물자 부족에 시달리지 않는다는 것이죠.
일의 방식 혹은 생활 방식을 바꾼다는 건 가치관의 변화를 의미하죠? 그렇다면 변화에 수반되어야 할 가치관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라파엘의 말에 따르면 유토피아 사람들은 쾌락주의적 태도 아래 삶을 살아가는데요. 여기서 쾌락이란 선하고 정직한 쾌락으로 자연의 인도에 따르는 것을 말해요. 너무 추상적이죠? 그래서 모어는 개념을 정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개념의 분류를 시도합니다. 진정한 쾌락은 육체적 쾌락과 정신적 쾌락으로 분류되는데, 육체적 쾌락은 또 감각을 만족시키는 즉각적인 쾌락과 외부 자극 없이도 안정적인 상태의 쾌락으로 분류돼요. 선한 쾌락에 대척점에 있는 사이비 쾌락 역시 여러 종류로 나뉘는데요. 좋은 옷을 입은 후에 스스로에게 도취되거나, 사냥과 노름에서 즐거움을 얻는 것들이 모두 사이비 쾌락에 해당하죠. 개념을 분류한 후에 개념 간의 관계를 밝히는 일도 잊지 않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작은 쾌락이 큰 쾌락에 간섭해선 안 되고, 그 어떤 쾌락도 고통이 뒤따라서는 안 되며, 사이비 쾌락에는 고통이 수반된다고 해요.
자, 이제 책의 종반부에 다다랐습니다. 오늘의 주장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려면 인상적인 끝맺음이 필요할 텐데요. 모어는 어떤 한 방을 준비했을까요? “라파엘 씨가 이야기를 마쳤을 때 그가 설명한 유토피아의 관습과 법 가운데 적지 않은 것들이 아주 부조리하게 보였다.” 라파엘의 묘사가 끝나자마자 모어가 한 말이에요. 좀 이상하죠? 그런데 오히려 그는 한발 더 나아갑니다. 이익 추구를 위해 재화의 최대 생산을 장려하는 국가관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며 “유토피아나 우리나라 양쪽 모두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고 자기 주장의 한계를 확실히 인정해요. 그런 후에 대신 유토피아에서는 사람이 굶어 죽을 일은 없다며, 자신이 이 논의를 시작하게 된 출발점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맞아요. 그는 1부에서 영국의 넘쳐나는 빈민 문제를 거론했었어요. 그의 말대로 모든 사람을 설득하는 건 불가능해 보입니다. 같은 사태를 놓고도 관점이 다르다면 결론 역시 다를 수 있으니까요. 다만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만큼은 모어의 이야기가 진지하게 들렸을 거예요. 나와 같은 문제의식을 지닌 사람들을 확실히 포섭하며 논의를 끝낼 것. 모어가 전하는 마지막 설득의 비법입니다.
참고 도서 : <유토피아> (을유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