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기록을 합니다. 고객의 요구사항에서 구매해야 할 생필품까지 일상이 기록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런데 오직 나만을 위해 기록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나 자신을 대상으로 삼는 기록은 때론 성장의 발판으로 역할하고, 더 나아가 하나의 콘텐츠로서 자산이 되기도 합니다. 여기 오직 자신을 위한 기록으로 이름을 남긴 이들이 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기록해야 나를 위한 기록으로 만들 수 있을지, 두 인물의 뜨겁고도 쿨한 기록법을 알아볼게요.
혹시 지난 주말,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하시나요? 하루하루가 쌓이지 않고 휘발되는 기분, 한 번쯤 느껴보신 적 있으실 텐데요. 흘러간 시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동안 무얼 했는지 일별해 볼 수 있다면 내일이 조금은 달라질 텐데 말이죠. 그런데 우리가 상상만 해본 그 일을 실제로 행동에 옮긴 사람이 있어요. 그것도 무려 56년 동안이나요. 러시아의 생물학자 류비셰프는 26세였던 1916년부터 사망한 해인 1972년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썼다고 해요. 그런데 일기의 형식이 좀 독특해요. 이거, 일기 맞나요?
중대한 사건도 비밀스러운 생각도 담겨 있지 않은 이 무미건조한 일기의 목적은 단 하나였어요. 바로 시간 관리입니다. 류비셰프는 20대라는 이른 나이에 생물학자로서 ‘유기체의 자연적인 분류 체계를 확립하겠다’는 인생 목표를 세웠는데요.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그가 매일 한 일이 바로 기록이었어요. 자신이 한 일을 시간 단위로 기록해 무엇을 얼마나 했는지, 낭비한 시간은 없는지 분석한 것이죠. 여기서 포인트는 그가 시간을 자산처럼 취급했다는 점이에요. 시간을 내 삶에 당연하게 속한 것이 아닌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으로 봤죠. 그렇게 그는 대기업의 회계장부를 방불케 하는 일기를 매일 써나갔어요.
이쯤에서 질문을 하나 던져봐야 할 것 같아요. 그의 집요한 노력이 효과를 보았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는 자신의 인생 목표를 달성하진 못했어요. 그러나 적어도 그의 넘치는 호기심을 관리하는 데에는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는 곤충분류학자이자 유전학자, 동물학자였고, 때로는 철학자, 역사학자로 활동했는데요. 시간을 철저히 관리한 덕분에 70여 권의 학술 서적과 1만2000장이 넘는 연구 논문을 남기며 다양한 분야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을 쌓을 수 있었죠. 류비셰프의 기록 방식은 너무나 초인간적이라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쉽게 생기진 않지만, 넘치는 호기심을 통제할 방법을 찾고 있던 사람에겐 충분한 참고가 될 수 있을 거 같아요. 혹은 인생에 한 번쯤은 누구나 원치 않아도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해야 할 상황에 처할 텐데 그때 류비셰프의 기록법을 활용해봐도 좋고요.
단 한 권의 책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문필가가 있어요. 여러분도 한 번은 들어봤을 이름인데요. 바로 몽테뉴입니다. 1580년에 출간된 <수상록>은 몽테뉴가 관직에서 내려와 10년 동안 은둔하며 내킬 때마다 썼던 메모들을 모아 놓은 책이에요. 법관으로 일하던 몽테뉴가 38세 되던 해, 칩거를 시작할 때만 해도 그에겐 특별한 목표가 없었는데요. 그저 내킬 때마다 책을 읽고 글을 썼던 그는 어떻게 10년 후 <수상록>이라는 책을 완성할 수 있었던 걸까요?
몽테뉴는 책을 읽다가 어떤 구절이 이해되지 않으면 그대로 책을 덮어버리는 아주 느슨한 독자였어요. 그는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재빠르게 파악할 줄 알았지만, 떠오른 생각을 정리하는 일에는 게을렀어요. 그렇게 생각들은 금세 사라졌고, 읽은 책들, 읽은 날짜도 까먹기 일쑤였죠.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글 쓰는 재주가 없다는 사실도 거듭 강조했는데요. 문법에 미숙하고, 말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할 능력도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죠. 어린 시절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에 가득 차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삶 전반을 통제하고자 했던 류비셰프와는 대조적인 태도죠? 열정적이진 않았으나 몽테뉴 역시 기록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어요.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을 순서도 체계도 없이 계속 기록해 나갔죠.
10년 뒤, 어떤 결과물이 나왔을까요? 몽테뉴가 자신이 쓴 글을 처음 모아 놓았을 때 그건 마치 연관성 없이 나란히 늘어선 글처럼 보였어요. 그는 글을 다듬거나 맥락을 이어주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는데요. 대신 자신이 쓴 글들에서 하나의 공통점과 방향성을 발견했죠. 그건 오직 나 자신을 위한 고민이 담겨 있다는 점이었어요. 그가 글을 쓸 때 견지했던 태도는 딱 하나, 솔직함이었는데요. 보통 사람들은 일기를 쓸 때조차 조금은 타인을 의식하잖아요. 그런데 몽테뉴는 타인에게 과시하거나, 조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스스로를 위해 글을 썼어요. <수상록>에는 실제로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을 뿐,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는 확정적인 메시지는 없어요. 모든 것이 순식간에 등장하고 급하게 사라지는 시대. 여러분은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지금 쫓고 있는 그것이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게 맞는 걸까요? 오늘부터 오직 나만을 위한 솔직한 기록으로 자신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보면 어떨까요?
참고 도서 : <시간을 정복한 남자> (황소자리), <위로하는 정신> (유유)